윗트니스 리의 삼일론은 결코 양태론(성부고난설)이 아님
변호와 확증
2010-04-28 , 조회 (48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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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질문과 비방에 대해서 지방교회는 결코 양태론적 삼위일체가 아님을 논증하고자 합니다.

 

 

1) 김기철이 윗트니스 리의 삼일하나님을  성부고난설등으로 비난하는 것은 그의 생각이 너무도 잘못되었음을 지적합니다.

http://blog.naver.com/kim7417329?Redirect=Log&logNo=50087270059

 

 

2) 하늘사랑님의 질문

어떤 지체가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을 때 아버지 하나님도 죽었다고 표현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삼일 하나님이 함께 죽고 함께 부활했다는 의미인데 이것이 성경적인지 진리에 맞는 것인지 아시는 분들이 답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논리적으로 해석해서 이런 말을 한 것 같은데 본인은 납득이 되지 않아서 질문에 올려봅니다. 좋은 교통 기대합니다. 샬롬.

[원본출처] 질문에 답변 달기 - 성경지식인 :: 교회들(http://kin.chch.kr/reply_qna/46284)

 

위의 질문과 비난에 대하여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 이종성박사가 지은 “삼위일체론”의 204p을 인용하여 우선 “성부수난설”에 대하여 알아보자

 

 

성부고난설

유대교적 유일신론을 굳게 믿는 입장에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신으로 믿거나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서머나 출신인 노에투슨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하나의 세 양태이다. 따라서 한분을 의미한다. 희랍어 ‘프로소폰’은 라틴어 ‘페르소나’(personsa)라는 말과 같이 얼굴, 모양 또는 배우가 쓰는 가면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세가지 가면을 쓸 수 있다. 그리고 무대에서 한 사람이 세 사람의 다른 역을 맡을 수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분이나 세 역할, 즉 창조자로서, 구속자로서, 성화자로서 삼중적 역할을 맡을 수 있다”라고 가르쳤다.

 

노에투스의 논적이었던 힙폴리투스의 글에 의하면 노에투스는 강한 유일신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은 곧 아버지의 수난이었으며(성부수난설), 그리스도의 다른 모든 인간적 경험은 아버지가 했다고 한다. 만약,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었다면 그는 아버지와 하나여야 한다. 그렇치 않으면 그가 하나님이 될 수 없었다.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했다면 아버지가 고난당한 것이다.

(중략) 노에투스는 터툴리아누스에 의해서 비판받고 교황 칼리스투스에 의하여 파문되었으나 그의 사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힙폴리투스의 글에 의하면, 그들은 . . . 하나님도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적으로 하나로 존재한다.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한 한 분이다. 아들은 독자적으로 실체를 가지지 않는다. 단지 한 입에서 나오는 음과 소리처럼 아버지와 한 분으로 존재한다. 처녀의 자궁에 들어간 것은 아버지 자신이며, 결과적으로 자기의 아들이 되셨다. 그리고 그가 고난을 당하고 죽으시며 부활했다. . . . 이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의 동일성을 강조하는 나머지 그는 “아들이 고난을 당할 때 아버지가 같이 고난 당했다.”라고 말했다. 여기에서 성부수난설이 표면화되었으며, 양태론과 함께 이단으로 처단되었다.

 

위의 인용글처럼, “성부수난설”은 아버지,아들,성령의 각각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한 하나님이 각각의 명칭으로, 기능으로, 역할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양태론이며, 이미 이단으로 처단되었다.

 

때문에, 윗트니스 리의 삼일하나님(삼위일체)을 “성부수난설”로 오해하는 것은 삼위일체에 대해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오해가 있는 것일까?  이제부터 어떤 오해가 있는지 알아보자.

 

1) 용어상의 오해

그것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서 경륜적으로 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과정을 거쳐 그영으로 완결된다는 것 때문에, 양태론에서의 기능적인 과정의 변화에 대한 유사성으로 인해 벌어지는 오해인 것이다.

 

위의 그림은 양태론적인 개념을 표현한 것이다. 한 하나님만 있고, 3가지 역할만 있는 것이다. 아버지의 역할을 하시다가,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아들로 역할을 바꾼다. 다시 시간이 지나면서 어떤 과정을 거쳐 성령으로 역할을 바꾼다.

이것은 마치, 한 가정의 아버지가 아침에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다가, 출근하면 회사의 사장역할로 바뀌고, 다시 저녁에는 교회의 장로 역할로 바뀌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한 사람이 세가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역할이 바뀌어가는 과정이 있듯이, 윗트니스 리의 삼일론도 <과정을 거쳐 그영으로 완결>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 마치 유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아버지가 있었는데, 아들의 단계를 통해서 그영의 단계로 가서 결국 생명주는 영이 되어, 사람안으로 들어온다.라는 식으로 "과정" , "단계"들로  표현해보면 얼마나 유사한것 같이 들리는가?

 

그럼, 무엇인 다른가? 윗트니스 리의 삼일론과 양태론(성부수난설)의 차이점은 극명하다. 용어적인 단어 몇개의 느낌이 유사하다고 하는 것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삼일론 : 1격,2격,3격이 동시존재

양태론 : 동시존재하지 않음, 1격이 있으면, 2격,3격이 없고, 2격이있으면, 1격,3격이 없으며, 3격이 있으면 1격,2격이 없는 것이다.

 

삼일론은 한 하나님 세 실체(세 역할)가 있으나, 양태론은 한 하나님 한실체(세 역할)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큰 차이가 있음에도, 막연한 용어상의 유사점으로 삼일론을 성부수난론의 양태론으로 판단한다면, 돌팔이가 수술을 집도하는 것과 진배가 없을 것이다.

 

2) 성부가 십자가에 달린 것이라는 오해

 

세 실체(아버지,아들,성령)이신 한분 하나님을 설명하다보면, 자칫 양태론의 혐의를 받게 되는 경우가 교회역사안에서 늘상 있었왔다.

삼위일체의 가장 최고봉에 있는 성 어거스틴마저도 양태론의 혐의를 받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이것은 삼위의 하나님께서 동시존재하시나 분리되지 않고, 상호내재하신다는 것으로 인해 생긴 인간지성의 한계 때문일것이다.

만일, 삼위 하나님에 대해 3개의 실체로만 인식하고, 논리적으로 하나라는 것만 생각한다면, 결국, 삼신론으로 치우치게 되 가능성이 아주 높다. 왜냐하면, 직관적인 측면에서 인간이라면 항상 세분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쉽게 지울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즉시로 하나님은 한분이라고 말해야하고, 실제가 그렇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고자 인간지성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으며, 삼위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한분 하나님을 고백하기 위하여, <관계>라는 논리를 도입하였다.

 

이 <관계>라는 것의 의미와 그 위치는 어떤 것인가? 여기서는 일단 생략한다. 다만, 삼위 하나님은 서로 관계적으로 동시존재하시며, 한분 하나님일 뿐이다.

 

이때에, 본 질문의 주제가 드러난다.

 

2격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십자가의 경륜을 수행하고 게실때에, 아버지는 어디에 계셨는가? 분리되어 하늘에 계셨던가? 아니다. 늘 관계안에 함께 계셨다. 왜냐하면, 삼위 하나님은 구분은 되나, 분리할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을 인간 지성으로서는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 아버지,성령도 함께 계셨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십자가에 실체적으로 달리시고 고난 받으시는가? 아니다. 실질적으로 아들이 받으셨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맞지는 않지만, 불가피하게 이해를 위해 설명을 하라고 하면,

 

자식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다면, 부모의 마음은 늘 자식과 함께 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편안한 생활을 누리지 않을것이다. 인간이기에 그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하나님은 2격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을 당하실 때에, 그리스도와 동일하게 그 고통을 알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이러한 측면에서,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는 분은 2격이신 그리스도이지만, 아버지도 함께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성부수난설"과 동일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인 것이며, 지식자랑을 일삼는 사람들의 허구적인 자기 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 윗 질문에 대한 답변이 준비되었다.

 

(질문) 어떤 지체가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을 때 아버지 하나님도 죽었다고 표현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답변) 아버지가 함께 하심으로 십자가를 함께 체험하셨다고 말해야 할것입니다. 일종의 간접체험이지만, 하나님이시기에 직접체험하신 것 만큼 알고 계시는 것과 같은 것일것이다

 

(질문) 삼일 하나님이 함께 죽고 함께 부활했다는 의미인데 이것이 성경적인지 진리에 맞는 것인지 아시는 분들이 답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아들이 죽고 부활 했으며, 아버지,성령 하나님께서는 분리되지 않는분이기에, 함께 계셨으며, 모든 것을 체휼하셨고 취하신것이다.

 

위의 답변들은 결코 양태론적인 일신론도 아니고, 삼신론도 아닙니다. 더더구나 변형되었다는 양태론도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삼위일체관이며, 오히려 이것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삼신론, 양태론으로 기울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은 많은 믿는이들이 이론과 지식으로는 정상적인 삼위일체론을 믿는다고 하지만, 관념적으로나 체험적으로는 존재론적으로 분리된 삼신론을 믿고 있을 가능성이 아주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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